해남윤씨 38충(忠)을 기리며 오늘날 우리가 유구(悠久)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배달민족의 우수성과 강인한 민족성 때문이다.우리 선조(先祖)들은 을묘왜변·임진왜란·정유재란·병자호란 등으로 나라가 풍전등화(風前燈火)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(憤然)이 일어나 창의(倡義), 목숨을 바쳐 나라를 보위(保衛)하였다. 여기에 해남윤씨 38충(忠)을 기리는 충혼탑을 세워 민족정신의 근간을 튼튼히 하고, 나아가 자손만대(子孫萬代)에 귀감이 되도록 하노라.
서기 2018년(戊戌)10월 18일 ◉ 을묘왜변(1555년) ∙ 尹弘中(윤홍중) 字는 중임(重任), 1546년(명종1) 문과급제 영 광군수. 을묘왜변 때 수성(守城)의지가 없는 해남현감 변 협(邊協)을 설득하여 함께 왜구 섬멸 전공(戰功)
◉ 임진왜란(1592년) ∙ 尹端中(윤단중) 字는 계정(季正), 퇴계 이황 문하 수학. 순천과 남원 등지에 주둔한 명나라 장수 성천지(成千祉)와 합류 종사관(從事官)활약. 사선(私船)으로 군수물자 운반 군영안정 ∙ 尹光沃(윤광옥) 字는 여설(汝說), 진사(進士)로 단중이 창의한 의병에 참가, 순천에서 땔감과 자염(煮鹽)및 군량을 운반 군영안정 ∙ 尹璉(윤연) 字는 원경(元敬), 1574년(선조7) 무과급제 훈련원 주부. 호위장으로 임금의 대가(大駕) 용만 호종. 당항포해전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. 선무원종공신 녹훈 ∙ 尹琇(윤수) 字는 원여(元汝), 1587년(선조20) 무과급제 관지부장(官止部將). 임금의 대가 용만 호종. 선무원종공신 녹훈 ∙ 尹仁弘(윤인홍) 字는 인숙(仁淑), 1590년(선조23) 무과급제 관지참상(官止參上) 수문장. 임금의 대가 용만 호종. 선무원종공신 녹훈 ∙ 尹環(윤환) 字는 여정(汝貞), 무과급제 훈련원 봉사·수문장. 임금의 대가 용만 호종. 선무원종공신 녹훈 ∙ 尹璋(윤 장) 字는 여환(汝煥), 무과급제 훈련원 봉사. 훈련원 인의(引儀)로 한산·노량해전 전공(戰功). 선무원종공신 녹훈 ∙ 尹琦(윤기) 字는 여온(汝溫), 무과급제 선전관·목포만호·훈련원 판관·당진현감. 통제사 이경준 막하 전공(戰功). 선무원종공신 녹훈 ∙ 尹沃(윤옥) 字는 계숙(季淑), 영암 밤재에서 왜적 격멸. 절충장군으로 우수사 이억기와 합세, 왜적과 싸우다 순절. 선무원종공신 녹훈. ∙ 尹曇(윤담) 字는 경운(慶雲), 1591년(선조24) 무과급제 훈련원 봉사. 진주성에서 김천일, 최경회 등 18주야 왜적과 격전, 전세가 기울자 촉석루에서 투강(投江) 순절. ∙ 尹彦中(윤언중) 字는 치방(致邦), 무과급제. 용양군 김응서 장군 막하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 ∙ 尹宏中(윤굉중) 어모장군(禦侮將軍)·훈련원 주부·만호첨사. 왜적을 물리치는데 크게 전공(戰功). 선무원종공신 녹훈 ∙ 尹興信(윤흥신) 字는 이경(而敬), 우수사 이억기 및 수군통제사 원균과 합세, 왜적과 싸우다 순절. 선무원종공신 녹훈.
◉ 정유재란(1597년) ∙ 尹俔(윤현) 字는 대유(大有), 1585년(선조18) 무과급제 훈련 판관 때 창의모병 달마산과 병치에서 전공(戰功). 장흥 석대 (石臺)에서 순절. 선무원종공신 녹훈. ∙ 尹儉(윤검) 字는 이소(而素), 1585년(선조18) 무과급제 군기시(軍器寺) 참봉. 창의모병 해남과 강진, 장흥에서 크게 전공(戰功). 선무원종공신 녹훈 ∙ 尹綸(윤륜) 字는 사언(士言), 무과급제 오위장군·만호부장(萬戶部將). 임란때 어가호위. 정유란 때 창의모병 병치와 옥천 성산들 전투에서 수많은 왜적 참살 후 순절. 선무원종공신 녹훈 ∙ 尹紳(윤신) 字는 사진(士搢), 남직(南職)으로 군자감 주부(主簿). 임진·정유재란 때 창의모병 병치와 옥천 성산들 전투에서 수많은 왜적 참살 후 순절 ∙ 尹致敬(윤치경) 字는 일지(一之), 전력부위 훈련원 봉사. 임란때 어가호위. 병치와 옥천 성산들 전투에서 수많은 왜적 참살 후 순절 ∙ 尹東喆(윤동철) 字는 고노(古老),부친 신(紳)과 종형 치경을 도와 창의모병 강진 병치에 진(陣)을 치고 수많은 왜적을 참살 후 순절. ∙ 尹履慶(윤이경) 字는 사영(士榮), 무과급제 양근군수 재임시 양근성을 지키기 위해 원병(援兵)도 없이 적진에 맞서 싸우다 순절. ∙ 尹益慶(윤익경) 字는 탁영(卓榮), 전주판관 재임시 창의모병 임금을 호위하려고 가는 도중 왜적을 만나 많은 적을 참살 후 순절. ∙ 尹準綱(윤준강) 字는 청연(靑淵), 소년 때 경서 통달 무과급제 호조참판. 해남에서 창의모병 달마산 전투 대승. 선무원종공신 녹훈
◉병자호란(1636년) ∙ 尹績(윤적) 字는 희백(熙伯),진사(進士). 창의모병 의병을 이끌고 청주로 진군하다 화의 소식을 듣고 귀향, 분개하며 두문불출 ∙ 尹縝(윤 진) 字는 밀보(密甫), 종형 적(績)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청주로 진군하다 화의 소식을 듣고 귀향, 분개하며 두문불출 ∙ 尹唯益(윤유익) 字는 익보(益甫), 의려(義旅)와 가동(家僮) 백수명 등 창의모병 청주에 이르렀으나 화의 소식을 듣고 귀향 은둔 ∙ 尹東老(윤동노) 字는 군수(君叟), 창의모병 임금을 호위하려 행재소로 가는 중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. 멸왜척화(滅倭斥和)좌우명 평생 절의. 선무원종공신 녹훈. ∙ 尹善道(윤선도) 字는 약이(約而), 1633년(인조11) 문과급제 양사(兩司)와 대군사부(大君師傅). 공경대부(公卿大夫)·빈궁(嬪宮)의 피난처인 강화도로 가동(家僮) 백수 명을 이끌고 북상하던 중 함락되었다는 소식 듣고 통곡, 보길도에 은둔. 숙종조 충헌(忠憲) 시호하사(諡號下賜) ∙ 尹善繼(윤선계) 字는 효백(孝伯), 의려(義旅)와 군향(軍餉)을 모아 청주에 이르렀으나 화의 소식을 듣고 통곡. 벼슬 누차 천거 불응. ∙ 尹仁美(윤인미) 字는 자수(子壽), 1662년(현종3)문과급제. 모의청을 설치 의병·군량미·군기를 마련 공급하여 난(亂) 평정 기여. ∙ 尹溥(윤부) 3등현령(三登縣令)으로 임진란과 병자호란 때 임금을 백의호종(白衣扈從). ∙ 尹孝國(윤효국) 字는 국경(國卿), 1637년(인조15) 무과급제 도총부도사. 아들 6형제와 함께 남한산성 전투 참전. ∙ 尹壕(윤호), 尹堠(윤후), 尹增(윤증), 尹境(윤경), 尹㙉(윤전), 尹址(윤지) 효국(孝國)의 아들로 남한산성 전투에 참전, 치열하게 싸워 큰 공을 세우고 5형제가 순국(殉國). 호(壕)는 부사과, 증(增)은 승의랑, 경(境)은 병절교위, 전(㙉)은 수의교위, 지(址)는 현신교위 증직. 둘째 통덕랑 후(堠)만 유일하게 생존 경기도 진위에서 충청도 당진으로 이거 정착.
|